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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4 (선수 선발)

by systrader79 2017.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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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4 (선수 선발)

내가 트레이더를 목표로 하게 된 이유는 모든 트레이더 지망생과 똑같았다. 견딜 수 없이 높은 ego 때문이다. 미친 듯이 현란하게 돈을 긁어모아야 내 과대한 자의식이 충족될 것 같았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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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돈 자체에 의미를 두진 않았는데, 더 엄밀히 말하면 돈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다만 지혜를 만렙으로 채우고 싶었다고 하면 대충 맞을 것 같다

계기는 이랬다. 주식 차트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더니 삼성증권이 30% 정도의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박스권이라는 단어를 당시엔 몰랐지만,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단히 신비하고 정교한 패턴을 찾아냈다는 느낌이 들어 다른 주식은 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께 100만 원을 빌려 투자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30만 원을 벌고 그만뒀다. 주식 따위 대단히 쉽고 하찮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 한동안 쳐다보지 않고 잊고 지냈다. 그래도 나름의 겸손이 있었나 보다. 그 정도의 경험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다만 나의 주식 경험이 남들과 다르게 수익으로 끝났다는 데서 잘난 긍지를 유지하는 정도의 요령을 부린 셈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 주위에 넌지시 주제를 꺼내니 신기한 반응을 접하게 되었다. 전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투자에 대해서만은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주식은 무조건 잊고 묵혀놔야 돼’, ‘주식은 싼 걸 사야 해’, ‘주식은 재무제표를 달달 외우면 돼’, ‘주식은 예술이야.’, ‘차트 속에서 그림을 보는 눈이 있어야 돼’, ‘주식은 가는 주식이 더 간다’ 등등 알고 보면 서로 엄청나게 상충되는 얘기를 엄청나게 그럴싸하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흥미를 느꼈다. 이들 중 다수는 나보다 딱히 많이 알지 못할 터임에도, 이들 모두가 진리를 찾은 양 얘기한다는 것, 그 자체로 그 진리를 직접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저 수많은 담론 중에 오직 하나만이 정답이라면, 그 오해의 산더미 속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어 과대한 자의식을 충족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쩐다.

남들이 자격증이나 열심히 따놓으라고 조언해줄 때 나는 해외 매크로 블로그를 읽으며 옵션 트레이딩을 시작했다. 그것 역시 대단한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다. 실전을 경험하지 않으면 남들과 같이 탁상공론 속에 헤맬 뿐, 깊이가 생기지 않으리란 생각에 과감히 수강료를 내는 것이라 (라고 쓰고 돈 다 날려보는 것이라 읽는다) 생각했다. 투자 격언에 “수강은 내가 선택하지만 수강료는 시장이 책정한다” 비슷한 말이 있는데, 나는 어쨌든 적정한 수강료를 내고 제법 많은 걸 배우고 기록해놨다, 애초에 수강이 목적이었으니까. 시장 경험이 있으니 옵션의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2008년 키움증권 입사 시에 단 한 명을 뽑는 서류 및 면접 과정에서 합격했다. 경쟁자는 약 백 명이었다고 한다. 남들과 달랐던 점은 자격증도 없으면서 옵션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점 아닌가 생각한다. 남들처럼 자격증을 따는데 시간을 썼더라면 면접의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양 우쭐해졌다. 역발상과 특유의 고집으로 얻은 성취감이니 오죽했겠는가. 좋게 얘기한다면 하나에 빠지면 미쳐버리는 근성과 뮤지션으로서의 집요함 같은 것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그때 나를 뽑아준 분이 해준 말씀은 이렇다. “옵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아서 좋아 보였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다 잊어야 해요. 이제부터 레이시오를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다시 공부해야 할 거에요. 레이시오 매매는 옵션매매의 완성판입니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내 삶을 얼마나 바꿀지 알지 못했다. 인제 와서 돌아보면 6년 넘는 옵션 트레이딩의 생활 동안 하나의 묘기를 배웠다면 ‘레이시오’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삶은 빠르게 건너뛰기 해보자. 이후 수년간 신입사원들이 어떻게 업계에 들어오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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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는 어떻게 뽑을까? 많이들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공개채용으로 뽑을 수도 있고, 타부서 경력직을 뽑아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인턴한테 짧게 기회를 주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업계 전체에서 연간 뽑는 인원이 총 수십 명 수준이니 사실 굉장히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 입사할 수 있다. 대형사들은 그래도 사내모집을 한 번씩 하는 편이지만, 중소형사들은 누군가의 보증을 받다시피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워낙 입사기회가 적다 보니 인턴 모집 때 경력이 지긋한 사람들도 정말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일반 대학생들은 중소형사 인턴에 흥미를 못 느껴서 많이 지원하지는 않는다. 사실 트레이딩에 간절한 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커리어로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도 않다. 피똥 싸다가 건강만 해치고 허영심만 잔뜩 부풀어 한동안 정상생활을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방식은 인턴들을 주기적으로 많이 뽑아, 배울 기회와 운용 기회를 주고 몇 개월에 걸쳐 관찰한 후 그 중 탁월한 친구들을 주니어로 전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후보자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전체의 비정규직 문제를 백배로 확대해놓은 듯한 방식이라 사실 당사자들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들을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자면 기회를 받는 사람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뿐이랴, 이들이 팀에 합류해서 소위 악성 재고처럼 팀 손익을 까먹다 보면 새로운 인력을 뽑을 기회는 더 줄어든다. 그러니 여러 사람을 뽑아 싹이 안 보이면 빨리 자르는 것이 실은 트레이딩을 꿈꾸는 전체 인구엔 가장 공평하다. 대형사 중에서는 대우증권이 이런 실험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젊은이들한테 너무 가혹하다는 뒷얘기가 무성하여 널리 확산되진 못했다. 뒷얘기가 무서워 애당초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한테 사다리를 오를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면인데 참 세상이 이렇다. 옵션 시장 규제하고 ELW 시장 규제하고 ELS 시장 규제하듯이, 기회가 무엇이든 간에 피해자가 나오면 아예 기회 자체를 막아버리기 급급한 게 현실이다. (왜, 사고 난다고 칼이랑 망치랑 톱이랑 다 규제시키지)

그러나 이러한 인턴제가 잔인한 것은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하기 때문인 부분도 있다. 트레이더가 제대로 육성되는데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3개월 혹은 6개월 인턴 기간에 ‘싹수’를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말이 6개월이지, 첫 달에 손실이 나면 위축되어 그 다음 달에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압박감에 시달려 뭔가 제대로 배울 시간이 부족하다. 회사 차원에서는 ‘육성’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의 발굴’에 뜻이 있는 것이니 물론 할 말은 없다.

한때 메리츠 증권이 인턴제 운영으로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아니면 자상하고 현명한 시니어들의 노력 결과였는지, 2008년경에 메리츠에서 천부적인 재능의 트레이더가 여럿 나왔다. 특히 세 명의 신진 선물 스캘퍼가 서로 자극을 주며 성장하여 일찍이 본 적 없는 레벨로 성장하였다. 메리츠는 이들로 인해 최소한 연간 100억 원씩 순이익이 증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들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일주일에 벤츠 한 대씩 살 수 있는 돈을 벌어가며 아무 때나 출근하고 아무 때나 퇴근했다. 공황장애라며 15분 만에 퇴근하는 분도 계셨다고 한다. 15분 동안 몇천만 원 벌어놓고 퇴근하니 다들 경이의 눈으로 쳐다봤다나. 다음 기회에 이들 트레이더들의 얘기를 더 할 날이 오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신진 천재의 탄생이 다른 증권사들의 신입 발굴을 부추기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치를 과대하게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런 신입사원들은 어떤 재능을 보고 뽑아야 할까? 위에 언급한 트레이더 중 한 명은 테트리스를 3시간 동안 할 정도로 동체 시력이 발달했다는 전설도 있는데, 스캘핑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재주일 것이다. 나머지 두분은 대학 포커 대회를 번갈아 가며 휩쓴 분들이었다. 또 가히 왕 중 왕이라 부를 수 있는 한 트레이더는 암산 능력이 천부적이었다. 여러 이유로 국내 가장 유명한 트레이더 중에 한 명인 박찬영 아저씨다. 이 형님은 사칙연산을 컴퓨터만큼 빨리하는 터라 실제 장중에 호가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누가 몇 계약을 언제 매수했다 언제 매도하는지 다 계산한다고 하셨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엄청나게 숫자를 더해서 암산을 부탁드려봤는데 정말 해내더이다. 그러나 이런 묘기들이 트레이딩 자질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트레이더의 자질은 절제력, 집중력, 정신력, 습득력, 겸허함, 독립적 사고력, 통계적 사고, 전략적 사고 등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이런 자질들을 쉽게 갖추기 힘들어서, 특정한 영역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들이 트레이더로서 유리하다. 예로 바둑인이라거나, 전문 군인, 스포츠 선수, 뮤지션 등 오랜 인고의 세월 동안 훈련을 거듭한 사람이 대체로 생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자질을 타고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도 같다. 처칠은 ‘사람과 차의 공통점은, 뜨거운 물에 담가봐야 그 진짜 향을 알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다소 잔학한 얘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사실 트레이더도 이래저래 다각도에서 살펴보지 않으면 그가 가진 정신력의 진짜 가치를 알기는 힘든 것 같다.

한번은 당시에 매우 잘나가던 우리 회사 트레이딩 본부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자격요건에 ‘돈 냄새 잘 맡는 사람’이라고 적어둔 적이 있었다. 인사팀에서 공개 채용 문서인데 의도는 알겠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너무 격 떨어지지 않냐고 항의가 왔는데 담당 트레이더들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걸 어쩌냐’라고 한참 웃지 못할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다소 천박하지만 저렇게밖에 표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돈에 대한 감각이 있거나,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돈을 안 쓰고 혼자 배부르자고 욕심만 부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수익을 일으키는 데에 남들보다 관심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어야만 험난한 트레이더 생활을 견뎌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해외 트레이딩 룸에서는 10억 손실을 낸 주니어가 화장실에 달려가서 토하는 모습을 보며 ‘저 친구는 멘탈이 약해서 안되겠다’며 짤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반면 옆에서 100억 손실을 내면서도 태연한 주니어는 ‘이놈 배짱이 제법 두둑하구나~’ 라며 사이즈를 올려줬다 카더라. 재밌는 얘기고 한때 부러워한 문화기도 하지만, 실제로 반대의 경우도 설득력이 있다. 어느 산악인이 ‘산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겐 산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었는데,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트레이딩을 가르쳤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 카지노에 가보라. 다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들이라 손실이 쌓여만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 게이머들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트레이딩에 적합할 거로 생각해 더지니어스에 출연한 홍진호한테 연락도 해봤었다. 쪽지를 보내고 얼마 후 식당 옆자리에 있길래 살살 얘기를 풀어봤는데 매니저분이 꺼지라는 눈빛이어서 제대로 못 꼬셨다. 엄밀히 말하면 홍진호를 꼬시고 싶던 것은 아니고 그의 후배들을 소개받아 입사시켜보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구상이었는데.

여하간에 신입을 뽑는 주먹구구식 방법들에 관해 얘기해봤다. 신입사원들이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출처 : 두물머리 천영록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lius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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